윤주철의 북리뷰

양철북

기억되는청춘 2014. 9. 18. 05:58

양철북 [The Tin Drum]

귄터 그라스의 장편소설을 영상화한 독일영화.

원어명 Die Blechtrommel

감독 폴커 슐렌도르프

제작 프란츠 자이츠

원작/각본 귄터 그라스/장 클로드 카리에르, 프란츠 자이츠, 폴커 슐렌도르프

주연 다비드 베넨트, 마리오 아도르프, 앙겔라 빙클러, 다니엘 올브리크스키등

상영시간 142분

본문

1979년에 제작되었으며 같은해 칸영화제 작품상 및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영화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구성은 원작에 충실하여 소설의 전개와 대체로 유사하다.

 

이야기는 폴란드의 카슈비아족 농부의 딸인 아나 콜리아이체크(배역:티나 엥겔)가 도망병을 치마폭에 숨겨 주었다가 그에게 겁탈당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 사내는 곧 뒤쫓던 군인들에 의해 사살되고 그녀는 아비 없는 자식을 잉태하여 딸 아그네스를 출산하게 된다.

아그네스(앙겔라 빙클러)는 성장하여 사촌 얀 브론스키(다니엘 올브리크스키)와 사랑을 나누지만 그가 입대한 뒤 단치히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독일계 남자 알프레트 마체라트(마리오 아도르프)와 결혼하여 아들 오스카어를 낳는다.

오스카어가 자라는 동안에도 아그네스는 얀과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두 사람은 불륜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 관계를 지켜보던 오스카어(다비드 베넨트)는 나중에 자기의 아버지가 알프레트가 아니라 얀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세 살이 된 오스카어는 우연히 장난감 가게에서 양철로 만든 작은 북을 발견하여 어머니를 졸라 손에 넣는다.

 

이후 양철북은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데 알프레트가 강제로 그것을 빼앗으려 하면 오스카어가 악을 써 근처에 있는 모든 유리가 박살이 난다.

이처럼 오스카어가 악에 받쳐 고함을 지르면 그 소리 때문에 주위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는 일이 그 뒤에도 몇 번인가 생긴다.

 

어느 날 마체라트 일가가 얀과 더불어 바닷가로 소풍을 나갔을 때 아그네스와 얀은 알프레트 몰래 서로의 몸을 더듬는데 알프레트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죽은 말의 머리를 이용하여 뱀장어를 잡는 데 열중한다.

 

곧 말의 시체를 보게 된 아그네스는 경악하면서 구토를 하며 얀의 부축을 받는다. 집에 돌아와 알프레트가 아그네스에게 뱀장어를 강제로 먹이려 하자 그녀는 음식 먹기를 거부하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세상을 떠난다.

 

아그네스가 세상을 떠난 뒤 알프레트는 젊은 처녀 마리아(카타리나 탈바흐)를 가정부로 고용하고 곧 그녀와 정을 통하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나치스 당원이 되어 집회에 나가기도 한다.

이어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이 단치히에 들어오자 우체국 직원이던 얀은 독일군에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사살된다.

 

세 살 이후 스스로 결심하여 성장이 멈추어 버린 오스카어는 우연히 서커스 단원이던 난쟁이와 알게 되는데 몇 년이 지난 뒤 전선 위문단의 간부가 된 그 난쟁이를 만나 그의 제의를 받고 자신도 위문단의 일원이 되어 전선을 누비다가 종전을 맞는다. 고향 단치히로 돌아온 그는 알프레트가 나치스의 동조자로 몰려 처형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이 성장을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슐렌도르프 감독은 카메라의 앵글을 성장을 멈춘 오스카어의 작은 키에 맞춤으로써 성인의 세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굴절시키고 있다.

또 말의 시체가 나오는 바닷가 장면의 초현실주의적 처리나 나치스 집회의 엄숙한 분위기가 오스카어의 북소리 때문에 행진곡이 왈츠로 바뀌면서 희화화되는 것 등 영화라는 시각언어로 원작의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킨 장면이 눈길을 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작가 귄터 그라스와 원작에 대해 다시 관심이 집중되었다.

양철북 - 넘 철학적인 어려운 영화입니당~좀 길어요

원제 : Die Blechtrommel.

원작 : 귄터 그라스 원 제 Die Blechtrommel. 79년작.

제작 : 프란츠 자이츠

감독 : 폴커 슐뢴도르프

음악 : 프리드리히 마이어, 모리스 자르

출연 : 다비드 베넨트, 모리스 자르, 마리오 아도르프, 알프레트 마체라트.

상영 시간 : 145분

수상: 32회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IFF Cannes Palme d'Or) 1979, 독일 영화상(금상) 1979, 52회 아카데미상(외국어 영화부문)1980

 

1959년에 발표된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은 전체가 3부로 구성된 작품으로 영화로는 감독 슐뢴도르프와 그라스가 공동 제작하였다. 원작자 그라스 자신은 각색 작업시 대사를 손질하는 일을 맡았고 영화화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강의 줄거리는

 

1924년 독일과 폴란드의 접경지역인 단치히에 오스카라는 아이가 태어난다.

그러나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의 두 남자 폴란드인 얀과 독일인 알프레드 중 누가 오스카의 아버지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두 아버지 사이에서 자 란 오스카는 3번째 생일을 맞은 날 어른들의 위선적인 모습에 대 한 반항의 표시로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하고 사다리에서 떨어진다.

 

성장이 정지된 오스카는 생일선물로 받은 양철북을 두드리거나 괴성을 지르며 소동을 일으킨다. 오스카의 행동은 나치를 괴롭 히거나 어른들의 세상을 분열시키기도 한다. 한편 오스카의 악마 적인 요소는 어머니와 두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다. 결국 오스 카에게도 성(性)과 죽음이라는 두려운 문제들이 다가오는데….

 

* 영화 <양철북>의 시점과 아이의 시선

소설 『양철북』은 1인칭 화자의 서술구조(오스카는 나레이터이자 관찰자이다)를 지니고 있다.

 

영화 『양철북』에서도 역시 1인칭 화자인 오스카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오스카가 전후 사정을 설명해 주는 친절한 해설자와는 구별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스카는 해설자이기에 앞서 주의 깊은 관찰자이다.

슐뢴도르프는 영화에서 이 관찰자의 시선을 영상으로 개입시킨다.

 

따라서 영화 속의 장면들은 전체의 반 이상이 3살 짜리 꼬마의 시점에서 본 어른들의 세계이다. 외할머니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각 장면들을 연결시키는 나레이터의 목소리도 꼬마의 당차고 기괴한 목소리이다.

오스카의 일상생활에서는 말더듬이 수준에서 머물 정도로 말이 없지만 나레이터로서는 어른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과시한다.

 

그런데 나레이터보다 더 강력하게 영화의 시점을 조절하는 것은 오스카의 시선이다. 오스카의 시선은 소시민 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어른들의 추태에 집중되고 있다.

위를 올려다보는(개구리 시선) 어린아이의 시선은 눈에 잘 안 띄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더 가까이에서 포착할 수 있다.

그의 냉정할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은 어른들이 겉으로 우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점잖고 격식을 차리고들 있지만 사실은 너나 할 것 없이 성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이중적으로 행동하며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집착하는 이기주의적인 속물에 지나지 않음을 여지없이 폭로한다.

 

결국 인간의 치부를 수치스럽게 드러내는 현실에 대해 역겨움을 느낀 오스카는 할머니의 네겹 치마 속으로 다시 숨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다시 모태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은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다시 나오는 순간에도 겪는다.

태아가 세상에 머리를 내미는 순간 아버지 마체라트의 소시민적인 반응이 그로 하여금 역겨움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른을 능가할 정도로 냉철하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가진 오스카는 동시에 어린아이의 순진하고 유치한 천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세 살이 되면 양철북을 선물로 주리라는 아그네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그만 세상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는 식의 유아식 논리는 이 영화의 전편을 지배하는 유머이기도 하다.

 

출산 장면에서도 카메라 시점은 태아의 시선과 일치한다.

180도 뒤집어진 상태로 처음 세상을 대하는 아기처럼 카메라 앵글도 180도 회전한다. 카메라가 대부분 오스카의 시점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초반부에서부터 암시되고 있다.

출생시 자궁으로부터 바라보는 세상, 생일날 파티 탁자 밑에서 직시하게 되는 어른들의 은밀한 성적 유희, 권위적으로 강요하는 어른들에 맞서 반항하기 위해 소리를 질러 시계유리를 깨는 장면 등에서 보여지는 개구리의 시선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소설의 배경이 단치히로 설정된 것은 우선은 원작자인 그라스의 실제 고향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소설 <양철북>은 단치히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캬슈바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그라스의 자전적인 체험이 기본 소재가 되고 있다.

그 밖에도 이 영화의 시대적인 배경이 2차 대전을 전후로 하고 있으므로 그 시발점이 되었던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치히는 오랫동안 슬라브 원주민, 독일인, 폴란드인, 유태인 등 여러 민족이 공존해 왔던 도시로 따라서 민족간의 갈등과 정체성 문제가 항상 쟁점의 대상이 되었고 나치가 2차 대전의 포문을 열어서 전도시가 파괴되어 전화를 입은 것은 비롯해 이 시대의 다양한 문제점을 한 몸에 끌어안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오스카의 이미지가 소시민의 속성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라스의 원작에서 출발한다.

 "오스카 마체라트는 소시민 계층 안에서 소시민 계층의 일부로서, 또 소시민 계층의 메가폰으로서 발언하는 인물이다". 슐뢴도르프는 이런 오스카의 소시민적 속성에 천착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 사회에 대한 시사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

오스카 마체라트는 독일의 전형적인 소시민의 속성을 보여준다.

불평이 많고 냉정할 정도로 이기적이면서 기회주의적이다.

 

물론 그의 경우는 아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허용된다.

오스카가 주변의 어른들을 모방하면서 재현하는 왜곡된 모습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어른들의 행동 역시 아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아이가 모방하는 것이 아이보다 더 유치하게 행동하는 어른들의 태도라는데 이 작품의 아이러니가 있다.

 

오스카의 거부적인 행동은 그의 항의와 저항을 보여주지만 오스카는 그가 생각하는 만큼 영웅적이지 못하다.

주의환경의 부조리와 모순을 직시하긴 하나 영웅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독일 파시즘이 성공할 수 있게 도와준 소시민 계층의 근시안적이고 비겁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오스카의 이런 이중적인 속성은 그의 목소리를 상징하는 양철북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독일 소시민층의 보수성향은 1차대전의 패배로 인하여 국수주의적인 경향으로 드러나게 된다. 우선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궁핍한 생활이 주범이었고 이로 인해 생존이 위협받자 소시민들의 민족주의적 방어태도는 더욱 급진적으로 변했다.

 

사회주의자인 귄터 그라스의 입장으로 볼 때 이들이 가진 의식이 탐탁지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반 유대주의와 새로운 질서라는 파롤을 표방하고 나선 나치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트로츠키가 "파시즘의 순수한 토대는 소시민층에 있다"고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나치가 소시민적 분노와 절망을 얼마나 잘 이용했나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라스의 눈에는 이들의 행동이 광대모자를 쓰고 양철북을 두드려대며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미숙아 오스카로 보였을 것이다.

즉 나치이데올로기에 현혹된 소시민 계층이 알레고리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런 것은 당시의 시대상뿐만 아니라 문화적 동기를 설명해주는 요소이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동기는 그 자체로 영화/예술의 본질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폭력이라는 분위기에 의해 더욱 적나라하게 모습을 보이고 강화된다. 이 영화는 외설시비에 말려들 만큼 아주 기괴한 장면들을 많이 담고 있다.

 

1) 주거건물 안뜰에서 개구리를 삶은 냄비에 오줌을 누고 그것을 오스카에게 억지로 먹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은 그 모습이 천진한 만큼 당시 인간 속에 숨어있는 잔인함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내고 있다.

더욱이 오스카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같은 계층의 아이들이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집단적이었다는 사실이 소시민의 폭력성을 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한 장면은 곧 전체를 말해준다.

이것이 문학과 다른 요소이다. 문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설명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한 이미지를 통해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2) 야채상 그레프는 소년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데 오스카가 3살 되던 날 키를 잰다. 오스카를 문틀에 기대게 하고 키를 표시하기 위해 단도를 끄집어 낸다. 나무 기둥에 단도로 금을 긋는 순간은 히틀러가 유겐트를 부르는 장면과 흡사하다.

 

3) 오스카의 시선에 나타나는 성애의 장면은 아름답거나 서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추잡하고 동물적이고 폭력적으로 묘사된다. 이런 장면을 대하면서 우리는 문학과 예술에 시대적 변천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서정 자체가 더 이상 우리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사람들 중에서 아직도 그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것은 닫힌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4) 마체라트의 식구는 바닷가에서 뱀장어를 잡는 광경을 목격한다. 낭만적 회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수난절 금요일의 바닷가 풍경은 인간의 그로테스크한 행위를 통해 더욱 역겹게 나타난다.

수난절이기 때문에 아마 물고기를 먹어야 했을 테고 그 물고기를 위해 말머리를 사용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바다 낚시꾼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선 이 식구들은 바다에서 건져낸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끔찍한 죽은 말의 머리인 것을 보게되고 그것을 파먹은 살찐 수십 마리의 뱀장어들을 목격한다.

 

1차 세계 대전 때 말의 시체뿐만 아니라 전사한 영국군들의 시체 덕분에 뱀장어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살쪘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낚시꾼과 아버지 마체라트는 우글우글 기어나오는 뱀장어를 신이 나서 감자 부대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아그네스는 구토하고 만다. 그러나 오스카는 냉정하고 무감각하게 뱀장어 머리를 자르는 옆에서 빵을 뜯어먹고 있다.

 

5) 알프레드 마체라트는 이 뱀장어를 요리해서 싫다는 아내에게 억지로 먹이려 하자 아내는 거부하면서 피아노를 발작적으로 친다. 그 피아노 곡이 '마탄의 사수'인 것을 보면 아그네스가 그의 남편에게 노골적으로 대항한다는 함축적인 뜻이 들어 있다. 또한 아그네스를 위로한답시고 방으로 들어선 애인 얀이 신을 향해 빌고 있는 마리아 막달리아 초상화 앞에서 한 차례 성으로 달래주자 아그네스는 냉정을 되찾고 그 뱀장어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뱀장어는 그라스의 그림에서도 자주 표현되고 있지만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마체라트의 행위는 (뱀장어를 억지로 먹이려는 행위) 강압적으로 성적 폭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을 역겨워하는 것은 그에 대한 저항이다.

 

나중에 아그네스가 생선 폭식증으로 가는 것은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얀과의 욕구를 마음대로 채울 수 없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결국 오스카의 말대로 "생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죽게 되는" 아그네스는 폭력의 희생물이다.

 

결국 귄터 그라스가 이 소설/영화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독일인의 소시민적 이기주의다. 시대의 변화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며 빵에 의해서 좌우되는 그들, 이들은 나치에 무조건적으로 협력하는 알프레드 마체라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작가 퀸터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을 읽어보세요,.